
17일, 세레소의 홈에서 벌어진 미토 홀리호크와의 J2리그 제15라운드. 많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펼쳐진 이경기는 그야말로 대혼전이었다. 상대적인 약체로 평가받는 미토를 상대로 후반 20분여까지
2실점. 3 - 2의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세레소에겐 어떠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때, 이날 동점탄의 시발점이 된 PK를 얻어내는 등 맹활약한 포워드 코마츠 루이가 정강이쪽을
감싸쥐며 통증을 호소했다. 꽤나 심각한 모양인듯 했다. 세레소 의료진들이 어느새 그라운드로 달려나와
곧장 벤치에 교체사인을 보냈고 레비 쿠르피 감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를
불러 투입준비를 시켰다.
이윽고 심판이 표시한 등번호는 20번. 표지판이 내려기가 채 무섭게 이날 경기장을 찾은 5000여명의
관중들이 동시에 '아키, 아키, 아키, 아키노~~ 아키노~아키노~~~'를 외치기 시작했다.
세레소의 영원한 등번호 20번이자 일본이 낳은 희대의 테크니션 니시자와 아키노리가 올시즌
처음으로 경기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후반 19분부터 뛰기 시작한 그의 감각은 여전했다.
나이에 따른 체력부담은 있는 듯 보였으나 교체투입되자마자 수비를 괴롭히는 멋진 포스트플레이와
카가와, 이누이 등과의 협력 플레이는 팬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후반 24분,
그림같은 플레이가 나왔다. 세레소의 피보테인 마르티네스가 다소 강하게 찔러준 스루 패스를
니시자와가 받는 척 하면서 그대로 흘려주었고 수비진의 집중력이 분산된 틈을 타 카가와 신지가
유연하게 볼을 컨트롤하여 골문으로 그대로 꽂아넣은 것. 4-2. 승부의 행방을 결정짓는 쐐기골이 터졌다.
수비진과 골키퍼를 완벽히 농락하며 골문을 가볍게 열어제친 카가와의 테크닉 또한 칭찬해 마땅하겠지만
그 이전에 니시자와가 보여준 플레이는 지난 몇개월간 만성적인 고관절 부상으로 앓았던 선수라곤 생각치
못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특히 자신을 마크하던 선수를 일순 바보로 만드는 그의 발재간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트레이닝에는 계속해서 참여해왔던 만큼 선수들과의 호흡 또한 오차가 없었다. 카이오를
부상으로 잃은 세레소에게나 몇개월을 쉰 니시자와 본인에게나 충분히 긍정적인 플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기는 경기 종료 직전 카가와가 자신의 프로 첫 해트트릭을 완성짓는 쐐기골을 터뜨린
홈팀 세레소가 5 : 3, 대혈전 끝의 승리를 거뒀다. 진현 선수가 3골을 내준 것과 미토의 김태영 선수의
몸이 다소 무거워 보인 것은 개인적으로 다소 아쉬움이 남았으나 카가와의 해트트릭과 니시자와의
복귀, 그리고 그를 위한 세레소 팬들의 열렬한 환영식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점에선 먼 길까지 온 보람이 있었던
시합이었음에 틀림없었다.
특히 올해로 만 33살, 한때 일본의 공격선봉장이기도 했던 니시자와의, 아직 '죽지 않은' 감각적인
플레이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사실 볼튼원더러스, 에스파뇰 등에서 뛰었을 때의, 그러니까 프랑스를 상대로 믿을 수 없는 발리슈팅을
때려냈던 전성기의 니시자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해까지 소속되어있던 시미즈 S 펄즈로부터는
나고야에서 뛰던 프로데 욘센의 영입으로 떠밀리듯 세레소로 온 그다.
하지만 어제의 니시자와의 움직임은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빌 생클리의 명언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노장의 부활은 꿈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Ps.
개인적으로 니시자와를 좋아하여 연습장에 가, 사인도 받았었다. 그때 내 펜의 잉크가
니시자와의 손에 묻었는데 그때 그 화난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ㄷㄷ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선수들은 도요타나 닛산의 차를 타는데 반해 니시자와의 차는 무려
포르쉐 박스터ㄷㄷㄷ패션 센스도 수준급. 뭔가 인생을 즐기는 듯한 이미지가 강했다.
아마 그의 인생 최고 골이 아닐까. 2000년 모나코에서 벌어진 하산2세 국왕컵에서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터뜨린 발리슈팅 영상.








덧글
세레소에 있었군요.
우승컵 거저 먹었...ㅎㅎㅎ
답변 감사합니다.